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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Jun

작가노트

작성자: [레벨:30]Admin 조회 수: 341

작가노트

'현실'을 의심하는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 공기처럼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는가? 라는 질문이 되돌아 온다. 왜 현실을 의심하는가? 의심해야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현실은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이다. 지금 우리는 숨쉬고 있고 몸 속을 흐르는 에너지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같은 방법으로 '나'의 존재를 느낀다. 이렇게 우리는 오감의 자극을 통해 축적된 정보로 현실을 쌓아 올리고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다. 동시에 현실 속 나를 구별해내기 위해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이 가진 모습을 인지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시각에 의지하게 된다.

나는 정말 지독한 근시라 안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이 형태를 잃고 뭉개져 보인다. 결국 내가 스스로를 구분해내야 하는 현실은 선명하고, 동시에 그렇지 않다. 이 두 개의 현실 중 어느 쪽이 참일까? 만약 둘 다 맞거나 둘 다 아니라면? 나의 의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현대예술에서 현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가 바로 사진이다. 나는 현실을 의심하기 위해 사진을 선택했고 의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반영 혹은 데칼코마니를 통한 병치를 쓴다.

'연필' 한 자루를 상상해 보자. 연필은 언제 어디에서 보고 몇 번을 다시 봐도 연필이다. 그렇다면, 연필 옆에 거울을 놓아보자. 연필이 두 개가 되었다. 원래 있던 하나는 실상이고 반영된 연필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허상이다. 이 두 개의 연필이 똑같아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보자. 이제 시각만으로는 실상과 허상을 구분할 수 없다. 촉각을 사용하면 구분할 수 있겠지만, 사진에는 촉각이 없다. 두 개의 똑같이 생긴 연필, 두 개 중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허상일까? 이렇게 실상이 허상처럼 보이거나 그 반대가 된다면, 둘이 겹치거나 뒤바뀌며 현실의 근간인 항상성이 흔들린다. 아니, 처음부터 상상 속 연필이기 때문에 실상이 아닌 허상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현실을 의심하는가? 의심해야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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